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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무엇이 한 공간을 교회로 만드는가?

by b2winus 2017. 2. 13.
그나마 신약의 교회 중에서 가장 현대의 가정교회 모델과 가까운 교회는 고린도 교회였다. 이 교회는 “온 교회”가 한 자리에 모이는 모임이 있었는데, 온 교회라는 표현은 부분적으로 모이는 작은 가정 모임도 있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린도 교회의 경우 전체가 다행히 함께 모일 수 있는 주택소유자가 있었는데, 그들이 모이는 주택은 어느 정도 컸을까? 머피 오코너는 고린도 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을 토대로 당시의 호화 빌라의 크기들을 분석한다.



이 빌라는 응접실에 해당하는 실내 공간에 트리클리니움이라 불리우는 삼 면으로 된 좌석을 갖추고 있었고, 이 공간에 앉아서 (혹은 비스듬히 기대거나 누워서), 파티를 했다. 이 공간은 36평방미터 안팎인데, 가구배치를 감안하면 9명 정도 밖에 들어갈 수 없다. 고린도전서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세어보고, 그들의 가족까지 감안하면 고린도 교인의 숫자는 최소 50명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러면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성찬/식사를 했을까? 머피-오코너는 일부는 실내 공간에서 나머지는 야외 아뜨리움에서 식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뜨리움은 55평방미터 정도로 40명 안밖을 수용할 수 있었을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이 먹는 음식의 내용 뿐 아니라, 식사 자리에서부터 큰 차별이 있었던 것이다. 세부적인 인원의 추산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런 구도에 동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실내의 안락한 공간에 앉고 누가 아뜨리움에 머물러야 했을까? 아마도 그 큰 주택을 소유한 주인, 그리고 주인과 친한 사람들,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람들이 안락한 파티를 즐겼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은 이 성찬의 상황을 자세히 보도한다.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하는 (고전 11:22)” 불평등이 거기에 있었다. 이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바울은 “기다리라”고 한다. 아마도 육체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 이들은 집회에 늦게 도착할 수 밖에 없었고, 일찍 온 부유한 계층들은 먼저 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잔치는 진행되고 있었고, 남은 음식의 상태는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것이고, 양이 모자라기도 했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도전한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 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고전 11:22)” 왜 교회에서 집에서처럼 행동하느냐는 질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교회(에클레시아)가 모인 곳이 누군가의 개인 집이라는 것이다. 가정집에서 예배하는 이 모임은 집인가 교회인가? 여기서 우리는 집에서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교회에서처럼 행동해야 하는가? 사람의 행동은 어떤 공간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확하게 말하면 달라지기를 요구 받는다. 공적인 공간에서는 공적으로 행동하고, 사적인 공간에서는 사적으로 행동한다. 상업적인 공간에서는 상업적으로 행동하고, 종교적인 공간에서는 종교적으로 행동한다… 결국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해석된 공간이다.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아마도 부유한 자들이 성찬에서 일으킨 문제를 바울은 공간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가져간다. 여기는 집이 아니고, 교회이다. 교회처럼 행동하라! 바울이 교회와 집을 날카롭게 대립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는 바울의 질책은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집”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바울 당시의 집(오이코스, 오이키아)는 억압적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폭압적 권력 하에 있었고, 아내들 역시 남편을 주라 불러야 할 정도였다.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초대교회에도 적지 않게 있었던 노예들에게 집이라고 하는 공간이 갖는 폭압성은 현대의 어떤 살벌한 직장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복음서에는 집을 떠나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집을 떠나서 집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꿈꾸는 종교적 여정은 계속해서 초대교회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는 종종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이런 구호를 본다. 이는 완벽하게 현대적 구상이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들었으면, 까무러칠 일이다. 교회(에클레시아)는 가정(오이코스) 같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면 무엇이 한 공간을 교회로 만드는가? 이것이 바울의 텍스트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고 오늘 우리의 현실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무엇이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가? 무슨 교회라는 간판인가? 네온사인 십자가인가? 장의자, 특별한 조명, 강대상 혹은 십자가인가? 바울의 경우 개인주택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임이 “집이 아닌 교회”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이었나?

교회를 교회로 만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바울이 성찬 문제를 논하면서 그들에게 주문하는 것은 단 한 가지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그리스도께서 이 자리에 임재해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이 자리에 계신다면 너희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 보라. 그게 정답이다…

… 생각해 보자. 내 집에 누가 들어올 수 있고 누구는 못 들어오는가? 그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손님을 한 잔치의 주빈으로 모셨을 때, 그 분이 원하는 분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종교적 진리이기 이전에 사회학적 사실이다. 내가 누군가를 중요한 손님으로 모신다면, 내 집이라는 공간의 주권은 그 주빈에게 양도될 수 있다. 이것이 교회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면 그리스도에게 걸맞는 삶의 모양이 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초대교회는 이 그리스도 신앙의 이 고백이 형성한 공동체였다. 공간이 우리를 만드는 힘에 대해서, 그 공간이 갖는 사회적 성경이 공동체를 규정하는 힘에 대해 저항하고, 그리스도 신앙이 공동체를 규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울 교회론의 주동기였다. “성전”이라는 표현이나, 한 도시 전체를 대표하는 민회라는 공적집회의 용어인 “에클레시아” 등이 교회론적 용어로 쓰인 이유를 우리는 이런 저항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바울의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 신학이었고, 저항의 신학이었다.

<고린도전서의 교회와 목회>에서
박영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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