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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솔로몬의 일천 번제

by b2winus 2017. 5. 12.

1. 솔로몬의 일천 번제?

열왕기상 3장 4절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이 말씀은 종종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국 토속적인 정서와 맞물려서 일천 번의 예배 또는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이 그 지극 정성에 감동하시여 마음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로 아직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올바른 성경의 해석일까?


정말로 1000번제?


2. 번역의 불일치: 개역개정 어쩔?

먼저 올바른 해석이 아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열왕기상과 역대하의 번역상의 차이이다. 솔로몬이 일천 번제를 드리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상 3:4 과 역대하 1:6 의 개역개정 번역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열왕기상 3:4)
And the king went to Gibeon to sacrifice there, for that was the great high place. Solomon used to offer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that altar.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 (역대하 1:6)
And Solomon went up there to the bronze altar before the LORD, which was at the tent of meeting, and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it.
ESV 번역본에선 분명 동일하게 “a thousand burnt offerings”라고 일관되게 기록한 것을 개역개정에서는 한 곳에서는 일천 번제로, 다른 한 곳에서는 천 마리의 희생으로 서로 다르게 번역해 놓았다. 원문의 해석에 따라서 1000번의 번제가 될 수도, 1000마리로 드린 번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지만 (אֶ֤לֶף עֹלוֹת֙ יַעֲלֶ֣ה) 백번 양보해서 전자의 번역이 맞다 하더라도 두 본문의 번역이 일관성이 없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아직까지도 이 명백한 오류를 수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3. 천번의 번제 보다는 천 마리의 번제가 더 설득력 있다.

위에서 제시한대로 원문 해석에 따라 1000번의 번제가 될 수도 있고 1000마리로 드린 번제가 될 가능성도 있지만 후자가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 다른 본문에서 번제로 드리는 제물의 양에 대한 언급은 있어도 횟수에 대한 언급은 없기 때문이다.


번제에 대한 구약의 총 35번의 언급들 중에서 욥기 1:5, 42:8, 역대상 23:31, 29:21처럼 번제로 드린 제물의 숫자에 대한 기록은 있어도 번제를 몇 번 드렸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있다면 제보 바란다. 따라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이 성경 다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 족보도 없는 번제 의식을 치뤘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1000마리의 번제를 드렸다는 후자의 해석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욥기 1:5)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욥기 42:8)


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명령하신 규례의 정한 수효대로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 (역대상 23:21)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역대상 29:21)

4. 그렇다면 정확하게 1000마리 드린걸까?

그래서 1000마리의 번제를 드렸다는 말일까? 이것 역시 해석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구약에서 천 (אֶ֤לֶף) 이라는 단어는 숫자 1000 외에도 “많다” 라는 뜻으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신 1:11)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 (창 24:6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6)”
위에 케이스 모두 다 정확한 숫자 1000을 뜻한 것이 아니란 사실은 자명하다. 이건 사실 이해하기 딱히 어려운 컨셉은 아니다. 손가락 발가락 다 사용해서 가장 많이 셀 수 있는 숫자가 20개 안밖이었을 고대에 천이라는 숫자는 말 그대로 그냥 “억수로 많다”는 동의어에 가까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굳이 솔로몬이 1000마리에 맞춰서 번제를 드려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에 본문은 그저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서 성대한 제사를 드렸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5.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은 번제의 횟수도 물량공세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든 것은 솔로몬의 치성어린 일천 번제도 아니고 천마리의 물량공세도 아니다. 10절에서 분명히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정성을 다해 드린 번제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 태도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는 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것은 무엇보다도 솔로몬이 듣는 마음을 구했다는 점이었다. 사실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 천번의 번제든 천마리의 제사든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들이 아빠 준다고 크레파스로 자동차를 그려서 줄 때 아빠 입장에서 그 그림이 무슨 예술적 가치가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종교적 형식이 마땅히 담아야 할 그 본질,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그 본질 자체가 핵심이지 형식이 본질보다 더 스팟라이트를 받는 주도전객이 되어선 안된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강조하면서 정작 그 주체가 되신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망각하는 건 아닌가 싶다. 누구를 위한 건지 알 수 없는 그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일천 번제는 그만 강조하고 정말 말씀의 핵심인 하나님의 듣는 마음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