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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소개: 교회 공동체와 돈

by b2winus 2017. 3. 18.

“교회에서의 돈에 관한 문제는 헤베르 루의 기막힌 저서에서 충분히 다루고 있으며 나로서 거기에 덧붙일 것이 없다.”

나에게 이 책을 구입해 읽어야겠다 결정하게 된 동기부여는 자끄 엘륄의 이 한마디로 충분했다.
코로 숨을 쉬고 입으로 밥을 먹는 사람들이 모여 현실을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로서 물질적 필요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돈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모호하다. 왠지 돈 이야기 하는 게 세속적이고 파렴치하고 부끄러운 짓이라 여기는 이상한 인식이 있어 항상 이 토픽은 성경구절 몇 개 인용한 원론적 답변이나 지극히 획일적인 방법론 토론으로 빠지고 만다. 아주 이상적이거나 아주 현실적인 양극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대체 교회 공동체에게 있어서 돈이란 무엇인가?  교회를 움직이는 “비밀의 동기 혹은 은밀한 원동력”인가 아니면 “약간의 수치스러운 나약함의 표시”일까? 저자는 “만약 교회 안에서 돈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입장을 취한다면, 교회에서 돈의 사용은 부식제와 같은 질문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질문은 위선적 교묘함 외에는 어떤 다른 포함할 수 없다. 즉 해방 없는 타협이다.” (P. 20) 라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돈에 대한 교회 공동체의 입장을 먼저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 정리는 먼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이에 저자는 우리가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르는 그 의미와 본질적 특성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견 없이 교회의 토대란 어떤 신학적 체계, 모든 교리적 규칙의 서술, 혹은 모든 윤리적 삶의 원리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살아 계신 주님라 고백하는 그 확신에 기반한다. 이 확신은 그냥 말 뿐인 추상적 원리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와 그 모든 관계의 이유이자 목적이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이 말, 너무 자주 들어서 상투적이기까지 한 이 말이 확실하게 교회의 본질로서 자리 잡고 있을 때 그 본질을 기반으로 한 모든 대외적 관계 정립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존재로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이다." 돈을 대함에 있어서도 교회는 그 모습이 복음을 증언하고 있는지 고려해야만 한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진정성을 가질 때에, 교회의 진정한 보물은 화려한 건물이나 탁월한 목회자나 넘쳐나는 성도수가 아닌 우리 주님이란 사실이 그냥 허울 좋은 말이 아닌 현실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절대적인 듯 보이는 돈의 권력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할 수 있다. 교회가 이윤의 종이 되고 축적하는 것에 마음을 뺏겨 바벨탑을 쌓고 맘몬을 섬기지 않으려면 모든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개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으로서 존재할 때, 황금 송아지는 파괴된다.” (P. 28)

그렇다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 신앙에 근거하여 교회 공동체가 돈과 관계할 것인가? 저자는 다음의 네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적용한다.

  1. 교회 재산의 관리
  2. 헌금
  3. 재산 공동체와 형제에 대한 도움
  4. 직무에 대한 보수
어느 하나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을 것 같은 민감한 문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접근이 성경에 충실하게 입각한 본질의 이해에서 출발하기에 100 페이지 체 안되는 이 정갈한 책을 읽다보면 당최 왜 이 간단한 문제들이 현실에선 이렇게 복잡했어야만 하는가 질문이 일어난다.

의도하는 목적에서 벗어난 모종의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는 항상 효과적인 해결 방법들을 모색한다. 돈을 대하는 교회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헌금에 대해 강조하는 설교를 한다거나 이웃을 돕기 위한 행사를 펼친다거나 하는 것 돈 문제를 대하는 교회의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의 해결을 방법 개선에서 찾기 전에 그 본질에 대해 재확인할 것을 강조한다. 교회 공동체가 참된 공동체로 서 있는가? 그러한 인식 속에서 돈을 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가 진정 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되고 있는가? 만약 이러한 뿌리가 건강하다면 돈을 대하는 교회의 방법은 얼마든지 다양한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돈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방법론을 통해 제도화 하고 의무화 하려는 안일함은 곧 은혜에 대한 갈급함을 앗아가고 성도의 자발성을 메마르게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회는 문제에 대해 외부적인 개혁을 기대하지 말고 내부적인 변화, 즉 예수 그리스도 공동체의 참된 본성을 재발견하고 그의 말씀에 의해서 재정립되는 일에 힘쓰라는 것이다.

왜 엘륄이 여기에 덧붙일 것이 없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것 같다. 여기에 무엇을 덧붙이려면 돈과 관련하여 교회 공동체가 마주하게 될 모든 상황들에 대한 모든 방법들을 일일히 나열하는 것 밖엔 없을텐데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어느 누가 감당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저자가 이야기 하는 본질의 회복에 대한 핵심은 깊게 동의하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제도와 의무의 개입은 마치 율법과 같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상적인 대본대로 교회가 참된 공동체의 인식을 가지고 그 자발적인 나눔과 축복을 이어간다면 좋으련만 소수의 건강한 교회들을 제외한 많은 경우 그 이상을 나누는 것조차 버겁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와 의무를 통한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참된 공동체의 회복이겠지만 그 과정을 어떻게 일궈내야 할지, 어떻게 코이노니아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할 수 있을지 때로는 막막하다. 어쩌면 이 막막함이 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이정표일지도 모르겠다.

교회 공동체와 돈
국내도서
저자 : 헤베르 루(HE'BERT ROUX) / 심상우역
출판 : 대장간 20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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